나는 원래 타고난 성격이 I, 내향적인 사람이다.

사람과의 관계가 싫거나 힘들진 않지만, 그래도 혼자가 편하다.

그래서 20대 초반까지 나의 모토는 튀지 않게, 배경 같이 살아가는 것이었다.

 

학부시절에도 모범생 기질을 버리지 못해 강의 때면 맨 앞자리를 선호하며 수업을 열심히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교수님께 각인이 될 만큼의 우수 인재는 아니었다.

그냥 호감적인 이미지 정도는 남겼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석사 유학을 준비하며 어떻게든 교수님 추천서만큼은 피하려고 했다

이미 졸업한 지 5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한 번도 연락도, 인사도 안 드리다가 "교수님, 저 추천서 좀..." 하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지

 

그런데 어찌저찌 하다 보니 교수님 추천서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왔고, 결국 교수님께 추천서를 요청드리기로 결심했다.

 

1. 추천서 부탁드릴 교수님 정하기

학부 시절 많은 교수님들을 만났는데, 적어도 전공에 한해서는 모든 교수님들이 다 좋으신 분들로 기억에 남아 있다. 물론 교수님을 날 기억 못하시겠지만 ㅎㅎ..

그 중에서 어떤 분께 추천서를 요청드릴까 고민하다가 나름대로 기준을 세웠다.

 

하나, 나와 어느 정도(최소한의) 안면과 친분이 있는 교수님 (주의: 나 혼자만의 느낌일수도 있다)

아무래도 수업 한 번 들었거나 하는 분께 부탁드리기는 좀 그랬다...

하지만 이것도 필요하면 할 수 있고 해봐야 한다 (뒤에서 부연설명)

 

둘, 추천서에 기록할 내용(나와의 어떤 특별한 사건들)이 있는 교수님

추천서는 웬만하면 다 좋은 말이다. 그런데 추상적인 말들(학구열이 높고 열정적이며...)은 의미가 없다.

어떤 사건을 통해 그 모습이 발견되었는지를 적어야 한다.

그렇다고 거짓으로 사건을 만들어서 교수님께 써달라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니 내가 강조하려는 나의 장점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사건이 있는 교수님을 택한다.

 

셋, 이왕이면 정교수님

사실 학계에서 정말 저명한 교수님이 아니라면 정교수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선택지라면 정교수님이 낫기는 할 것이다.

물론 스토리 없는 정교수님 추천서 vs 스토리 좋은 다른 분 추천서라면 무조건 후자이지만.

 

그렇게 해서 나의 추천서를 적어주실 교수님을 최종 결정했다! (정작 교수님은 아직 모르시지만ㅋㅋㅋ;;;)

나의 경우는 수업을 한 번 들어서 A+가 나왔었고 무엇보다 나를 장학생으로 추천해주셨던 분이셨다. (특별히 내가 뭘 해서가 아니라, 당시 교수님께서 학과장이셨기 때문일 뿐이다).

사실 고학년이 되어서는 잘 못 뵈어서 조금 걱정했지만 그래도 내 추천서를 적어주시기에 가장 적합하신 분이셨다.

 

 

2. 교수님 컨택하기

이제 교수님께 추천서를 부탁드릴 차례다.

그런데 정말 고민 많이 했다. 그냥 추천서 없이 할 수 있는 데로만 할까...

아까는 안면이 있는 교수님이 좋다고 했지만, 막상 요청을 드리려 하니 '아니, 장학생으로 추천까지 해주셨었는데 실컷 잠수 타다가 이제 와서 추천서 부탁드린다고?' 하는 생각에 지레 더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모교 커뮤니티에 과연 추천서를 부탁드려도 되는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부탁드려야 하는지 글을 올려봤다.

그런데 다행히도 대다수의 동문님들께서 "교수님들께는 매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냥 공손하게 본인 소개하고 이러이러한 경위로 추천서가 필요하여 면담을 받고 싶다고 하면 된다. (교수님 성향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추천서가 필요한 상황인 걸 뻔히 아시기 때문에 빙빙 돌려말하는 게 오히려 답답하실 수 있다. 예의 바르게 직접적인 언어로 소통하라."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교수님께 그렇게 이메일을 드렸다.

핸드폰 연락처도 가지고는 있었지만, 교수님께서는 내 연락처가 없으실 것이기 때문에 이메일로 먼저 연락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xx학번 졸업생 xxx입니다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졸업 후 한 번도 제대로 찾아뵙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이번에 이렇게 메일을 드리며 이전에 교수님께 송부드렸던 메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재학시절 교수님께서 장학금 추천해주셨던 이야기)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올해 가을 입학을 목표로 석사 유학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유학을 준비하게 된 경위, 목표 대학 및 학과 등 부연 설명)
이제 원서를 준비하는 과정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모로 부족한 저이지만, 교수님께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었고, 교수님의 xxx 강의도 좋은 성적으로 잘 마칠 수 있었기에 혹시 교수님께로부터 추천서를 받을 수 있을지 여쭙고 싶어 이렇게 메일을 드리게 되었습니다.교수님의 승낙 후에 추천서 일정 및 양식 등을 다시 첨부드리고 방문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졸업 후 한번도 찾아뵙지 못하다가 이렇게 갑작스레 연락을 드리게 되어 다시 한번 정말 죄송합니다.
한번 고려해주시고 답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xxx 드림

 

그런데 바로 다음날, 정말 정말 정말 너무 너무 감사하게도 교수님께서는 면담 약속을 잡아주셨다.

막상 저지르고 보니 별일 아니었다 ㅠㅠ

참고로 추천서는 최소 마감일 2주 전에 부탁드리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3. 추천서 받기

이건 교수님마다 약간 다른데, 어떤 교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추천서를 직접 작성해주시기도 하고, 어떤 교수님은 원하는 방향성을 적어오면 거기서 수정하여 주시기도 한다.

사실 전자가 추천서의 본질일 수 있지만, 교수님이 나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추천서를 요청드리니 후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

후자인 경우에는 교수님께서 먼저 말을 해주신다. 함부로 초안을 보내드리는 건 무례한 일이니 그렇게는 하지 말자.

 

나도 교수님께서 이력서와 수학계획서, 혹은 추천서 드래프트를 달라고 하셨다.

나는 교수님께서 나를 잘 모르실 것이라고 생각하여 추천서 초안을 드리기로 했다. 앞서 언급한 교수님 강의를 들었던 일과 그 강의 중 있었던 어떤 좋은 사건, 그리고 장학금 추천해주신 이야기를 (예쁘게 포장하여) 뼈대로 잡아 적었다.

사실 교수님께 보낼 때 좀 많이 민망했다....^^;;;

하지만 잊지 말자, 교수님께는 익숙하신 상황이다. 그리고 거짓말은 안 적었다구!

 

아무튼 그렇게 초안을 이메일로 미리 보내드렸다.

나는 동일한 내용으로 2개 대학에 대한 추천서가 필요해서, 파일 첫 페이지에 추천서 제출 대학, 일정, 방법에 대해 표로 정리해 드리고 뒤에 2개 추천서를 붙였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수정하시기 편하시도록, 2개 추천서 중 서로 다른 부분(대학명, 학과명 등)에 형광표시를 해서 드렸다.

 

이후 교수님을 뵈러 갔다.

너무 감사하게도 교수님은 얼굴을 보자마자 "아, 너였구나!" 하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리고 점심식사도 사주셨다. (커피는 내가 대접해드렸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사실 나는 이 늦은 나이에 석사 유학을, 그것도 전공을 바꿔 가는 것에 대해 좀 민망스러웠는데, 다행히 교수님께서는 "박사도 갈 거니?" 하며 이런저런 조언도 더해주셨다.

덕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교수님 추천서 받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마치며

흔히 추천서 받는 것을 드래곤볼 모으는 것에 비유하더라 ^^;;

그만큼 추천서를 받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긴 하다. 특히 한 개만 필요한 경우보다는 3개 정도씩 필요하기 때문에, 써주시겠다는 세 분을 만나기도 힘들고, 본인이 초안을 다 적어야 하는 경우는 멘트가 겹치지 않아야 하니 더 힘들다.

하지만 막상 요청해보면 교수님도 흔쾌히 잘 들어주시는 것 같다.

내 추천서를 적어주신 교수님께서도 내가 죄송하다 하니, "추천서는 교수의 의무"라고 하셨다.

그러니 꼭 필요하다면 지레 겁먹고 포기하기보단 한번 눈 딱 감고 부탁드려보면 좋을 것 같다.

 

다시 한번 교수님 감사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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