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스위스 유학 일기] 나의 청춘시트콤 학생숙소 이야기2: 청소 대란

우리 플랫 구성원은 아래와 같다. (나름 국기색으로 구별해봤다)

- 일리야: 우크라이나 남자애인데 무려 19살이다. 우리 플랫 공식 말썽꾸러기. 취리히 연방공대에 교환학생중이지만 곧 정식학생으로 편입하려고 준비중이다. 
- 얀: 스위스 남자애인데 20살로 일리야와 같은 학과이다. 키가 크고 토르랑 너무 닮아서 별명이 토르이다.
- 마르따: 스페인 여자애인데 20살로, 취리히대학교에 교환학생 중이다. 포스 있고 흥도 많은 장난꾸러기이다.
- 다니엘: 스코틀랜드 남자애인데 20살이고, 취리히대학교에 교환학생 중이다. 거의 매일 매순간 술을 마신다. 나긋나긋한 성격+말투로 마르따와 늘 티격태격하는데 그런 둘을 보고 있으면 너무 재밌다.
- 벤: 오스트리아 남자애이고 23살이다. 유일하게(?) 이 플랫에서 깔끔함을 유지하려고 노력중이다.
- 난디따: 인도 여자애인데 20살이다. 그럼에도 벌써 석사학생이다. 모두가 어떻게 난디따가 20살에 석사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일리야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기 식재료를 공용 테이블 위에 둔다거나 냉장고 칸을 여러 개 쓴다거나 해서 종종 비난의 대상이 되어 왔는데, 어느날 일리야가 싱크대에 쌓여 있는 그릇 사진과 함께 "며칠 전부터 이런 상태이다. 다들 나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아니다. 오해 받기도 그렇지만 주방을 깨끗하게 이용했으면 좋겠다. 이런 메시지로 분위기 망치고 싶지는 않지만 이 글을 올려"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나름 일리야도 억울했겠구나 싶었는데, 거기에 마르따가 "그래, 설거지에 대해서 불평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어. 근데 지난주부터 이번주까지 각자 청소구역 청소하자고 했는데 한 거 나밖에 없는 거 알지? 그리고 여전히 여기 공용 공간에 굴러다니는 쓰레기는 너꺼네"라며 펀치를 날렸다. (싸우지마 얘들아ㅠㅠ)
 
내가 외출한 사이에 있던 일이라 숙소로 돌아와보니, 주방에 마르따와 다니엘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다니엘은 나를 보며 "3차 대전이 일어났어"라고 했다 ㅋㅋㅋㅋ
그래서 내가 "혹시 그 사이에 또 무슨 일이 더 있었어?"라고 했더니 마르따는 "아니, 일리야는 방에 있는데 안 나오고 답장도 안해. 왜냐하면 내 말이 맞다는 걸 자기도 알거거든"이라며 냉전 분위기를 뿜뿜 했다.
 
그래서 이 불편한 분위기도 싫고, 더러운 건 더더 싫어서 결국 내가 팔 걷어붙이고 주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르따도 도와주기 시작했다. (마르따는 책임감은 강한 편이다.)
그러다가 일리야가 나왔는데 "내가 뭐 도와줄 게 있어?"라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모두가 함께 청소를 하게 되었다.
 
사실 청소는 내가 혼자 했고, 메인퀘스트는 쌓여있던 유리병과 캔들을 버리는 것이었는데 무려 큰 장바구니로 8개가 나왔다^^... (얘들아 제발..)
마르따, 다니엘, 일리야, 그리고 나 넷이서 사이좋게 나눠 들고 가는데, 그 와중에 똥꼬발랄 일리야는 내가 든 장바구니가 무거워 보였는지 (사실은 무거운 게 아니고 손잡이가 끊어져서 들기 힘들었다) 자기는 이미 2개나 들었으면서 자기한테 주라고 한 손이 비었는데 어디에 쓰냐고 엄청 어필했다ㅋㅋㅋ
결국 타협해서 내가 손잡이 멀쩡한 거 2개, 일리야가 끊어진 거 1개를 들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다니엘에게 "제발 이제 술 좀 적당히 마셔. 오늘 너가 처음으로 미워졌어."라고 했고, 다니엘은 다소 충격받은 얼굴로 "알겠어.."라고 했다ㅋㅋㅋ
 
이후에도 여기저기 청소하고 나니 이제야 사람 사는 곳 같아졌다.
그리고 저녁식사 후에 일리야와 테이블에 같이 앉아 수다를 떨었는데, 정말 얘는 좀 심각하게 개구쟁이다... (하..)
너무 까불거려서 내가 한국어로 "내가 이 어린 애랑 뭐하고 있는 건지..."하니까 일리야가 무슨 뜻인지 듣더니 엄청 웃으면서 그럼 "old lady"는 한국어로 뭐냐고 해서 내가 "늙은 여자"라고 알려줬다...ㅋㅋㅋ
그리고 제발 늙은 여자 좀 존중해 달라고, "Don't be rude to me"라고 경고했다.
 
오늘도 평화로운 우리 플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