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포스팅에서 적었던 것과 같이 나는 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어느새 나이가 들어 다소 과거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외고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어, 외고를 준비 혹은 희망하는 예비고등학생분들과 학부모님들을 위해 글을 적어본다.
외고 FAQ 팩트 체크
나 역시 외고를 진학하기 전, 외고에 대한 여러 궁금증이 있었다.
그런 궁금증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본다.
Q. 외고에 진학하는 게 좋은 대학 가는 데 도움이 되나요?
A. 케이스 바이 케이스입니다만,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안 된다'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아래 글에서 풀어서 설명해두었습니다.
Q. 외고를 가면 외국 대학을 가는 데 도움이 되나요?
A. 이건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다녔던 외고에서는 국내진학반과 해외진학반이 모집 때부터 나뉘어 있었습니다.
12개 반 중 2개 반만 해외진학반이었는데 거의 교류가 없었고 학생 관리 방식도 많이 달랐습니다.
다만, 일본 대학 진학의 경우에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은 국내진학반에 같이 있었는데, 반 친구들 중에도 일본 유학을 준비하는 친구가 5명 정도 있었고 모두 국비와 사비 등으로 일본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해외 대학에는 파운데이션 코스를 요구하는 곳도 여러 군데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고등학교 때부터 해외대학을 준비하기보단, 국내대학을 진학한 뒤 1학년을 이수하고 해외대학을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Q. 외고 학생들은 다 영어를 잘하나요? 해외 경험이 없으면 힘든가요?
A. 제가 입학할 당시(약 10년 전)에도 내신 전형과 일반 전형 모두 영어시험을 치러야 했기 때문에, 당연히 일반고에 비하면 잘하는 편이지만, '엄청나게' 잘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영어가 조금 부족해도 해볼 만은 하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해외 여행 경험조차 없던 한국 토박이였고 입학 당시 영어 성적은 텝스 700 초반대 정도가 아니였나 싶은데요.
회화 수업은 어려워했지만 그 외의 영어 부분은 나름 중상위권(영어 내신 3등급 정도)에 속했습니다.
하지만 영어를 잘하면 좋다는 건 팩트이지요.
Q. 외고에 가면 외국어 학습에 큰 도움이 되나요?
A. 별로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학교 수업 중 전공어(저의 경우 일본어) 수업 비중이 큰 것도 맞고, 2-3학년 때는 제2외국어 (저의 경우 스페인어)를 배우는 것도 맞지만, 순수하게 '외국어'를 배우고 잘하는 게 목표라면 굳이 외고를 갈 필요는 없습니다.
차라리 그 시간과 비용을 인터넷강의나 학원에 투자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됩니다.
Q. 외고 가면 돈이 많이 드나요?
A. 아무래도 인문계보다는 많이 듭니다. 우선 수업료가 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성적 우수생 장학금이 있긴 했지만, 전액은 아니었고 받기도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잘 사는 학생들만 오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경제 수준이 높은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다만, 수업료 부분만 제외한다면 걱정할 만큼 돈이 많이 드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사교육은 대부분 받지만 어쨌든 개인 선택이고, 저는 고등학교 3년 동안 사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따로 포스팅하려고 합니다)
외고 추천 or 비추천?
외고 출신인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아마 "외고 추천해요?"인 것 같다.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르니까.
그래서 3년 동안 외고를 다니며 개인적으로 느꼈던 장단점을 소개해본다.
외고 진학의 장점
확실히 학습 환경이 좋다
전반적으로 모두가 한 목표(=좋은 대학)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학습 분위기가 잘 형성되어 있다.
수업 분위기나 야간자율학습 분위기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심지어는 일부이지만 쉬는 시간에도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있다 보니, 늘 내가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미래의 인맥 형성: 학연은 무시 못 한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학연'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는 혈연, 지연, 학연의 나라니까.
물론 좋은 대학에 가면 그곳에서도 인맥이 형성될 것이지만, 그만큼 고등학교 역시 '학연'에 드는 것 같다.
나의 경우, 외고 같은 반 친구들의 다수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경찰대, 동경대, 와세다대 등 명문대학을 졸업했다.
아직은 내가 20대 후반이기 때문에 크게 와닿지는 않지만, 분명 내 인생에 큰 도움을 줄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가치를 높여준다
사실 나는 한영외고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 입학했을 때에 비로소 한영외고가 굉장히 좋은 곳이었구나 하는 사실을 느꼈다.
외고의 상위권 애들과 경쟁하면서 이것저것 했던 경험들이 알게 모르게 나를 성장시켜줬다고 해야 하나.
예를 들면, 고등학생 때 나는 영어에 자신이 없는 편이었다. 그래서 영어 시간에는 항상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오히려 대학에 오니 내가 중상위권에 속하게 되었다. 솔직히 이때 고대가 별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결과주의인 한국사회에서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그래도 상향평준화된 집단 속에서의 끊임없는 경쟁이 나를 성장하게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특별한 경험이 된다
외고라는 특별한 집단 안에서의 생활은 꽤나 특별한 경험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일반고 생활을 안 해봤기 때문에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동아리 활동이나 수업이나 수련회나 (한영외고 한정인 것 같지만) 체육대회나 문화제는 다른 학교에서는 경험하지 못할 특별한 추억이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일주일에 한 번인가, 아침 자습시간에 자율적으로 수학 문제를 푸는 날이 있었다.
수학 심화문제를 나눠주고 각자 풀게끔 했는데, 친구들이랑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토론하며 풀었던 경험은 아직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2) 일본어 회화 시간에는 어떤 주제에 대한 핵심 단어와 표현을 배운 뒤 짝을 지어 상황극을 하는 수행평가 활동을 했었다.
창의력을 발휘하며 대본을 작성하고 선생님께 감수 받은 뒤 열심히 외워서 소품도 준비해 상황극을 했었는데 참 재미있었다.
외고 진학의 단점
내신 전쟁
나는 이 부분 때문에 외고에 진학한 것을 후회했었다. 솔직히 내가 일반고에 진학했다면 서울대에 갈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중학교 때 나는 거의 전교 1등을 했었다. 시험이 쉽게 나온 덕도 있지만, 전과목에서 2개 정도 틀릴까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외고에서는 내신 성적만 보면 전교 30등대였다.
정말 피 터지는 내신 전쟁의 연속이었다. 수학도, 영어도, 어느 한 과목도 만만한 과목이 없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전반적으로 영어를 잘하다보니 영어 시험지는 총 10쪽에 달했고 시험 범위에는 원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문제를 다 풀고 마킹을 겨우 끝내자마자 시험 시간이 종료되어 손이 달달 떨렸던 게 기억 난다.
수학도 상당히 어렵게 출제됐었다. 외고임에도 수학 머리가 좋은 아이들이 많아서 시험 문제가 항상 어렵게 출체되어 굉장히 힘들었다.
특히 전공어였던 일본어도 문제가 많았다. 외고의 특성상 일본어 과목이나 수업시간이 많아 내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나는 고등학교에 합격하고 비로소 히라가나를 외웠던 일본어 초짜였다.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 일본어를 좋아하는 친구들, 일본 유학을 준비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평범한 내가 일본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3년을 평균 내어 3등급 초반대의 내신을 받았지만, 결국 이 내신은 내가 대학을 진학하는 데는 별다른 도움이 안 됐다.ㅎ...
자존감 하락과 극심한 학업 스트레스
나는 원래 공부를 꽤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런데도 외고에서의 학업 부담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상당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부족하다고 느껴졌기 때문.
고3 때는 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서 무기력증도 약간 있어 특단의 조치로 일기를 쓰기도 했다.
특히 영어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완전 하락해서 영어 울렁증이 생겼고, 아직도 여전히 그 영향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은 상태다.
외고 폐지? 정부 지원 부족
내가 외고에 입학할 때도, 그러니까 거의 10년 전에도, 외고 폐지론은 있었다.
외고라는 엘리트 학교를 없애야 한다는 말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나도 졸업하면 후배가 없는 게 아닐까 생각도 했다.
어쨌든 국가에서 지원해주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것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외고의 메리트(예. 수시에서의 외고의 우위성)를 깎아버리는 일이기 때문에 굳이 외고를 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람에게 외고 추천
주변의 학습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경우
보통 남학생이 많이 해당되는데, 주변 학습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면 확실히 학업 분위기가 잘 조성된 외고에 가는 게 도움이 된다.
내신 성적은 약하지만 영어와 같이 특출난 특기가 있는 경우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특기자 전형을 지원할 수 있을 만한 특기가 있는데 딱 각 잡고 앉아서 꼼꼼하게 시험 문제를 푸는 타입이 아니라 내신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라면 외고라는 곳에서 자신의 밸류를 높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다양하고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은 경우
만약 '좋은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가 아니라, 정말 비슷하면서도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만나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외고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이런 사람에게 외고 비추천
환경에 상관없이 알아서 공부하는 경우
외고에서의 경험이 특별하다고 적었지만, 일반고에서의 경험도 매우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똑같이 공부만 하는 학생들이 있는 것보다 오히려 다양한 분야의 관심과 재능을 가진 학생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은 좋은 경험이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환경에 영향받지 않고 알아서 공부하는 경우라면 굳이 외고를 갈 필요가 없을 수도.
특출난 재능은 없는 노력&성실파
내 이야기이다.. torr....
특히 중학교 내신 성적이 최상위권인데 딱히 엄청나게 영어를 잘하거나 하는 게 아니라면 그냥 인문계에 진학해서 내신 관리 잘해서 수시 전형에 지원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나에게 맞는 외고 고르기
전국 외고 순위
포스팅을 하며 전국 외고 순위를 찾아보았다. 사실 외고 순위는 대학 순위와 달리 객관적인 지표는 없는데, 아래 순위는 아마 서울대 합격자 수로 순위를 매긴 것 같다.
- 대원외고
- 한영외고
- 대일외고
- 명덕외고
- 고양외고
- 경기외고
- 안양외고
- 대전외고
- 성남외고
- 부산외고
이번에 순위를 찾아보며 조금 놀랬던 게, 내가 외고를 지원할 때랑 순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소 압도적인 대원외고 >> 한영/대일/명덕외고 이런 느낌?
추천하는 외고
나는 한영외고 출신이다.
당시에도 서울에 있는 6개 외고 중 대원외고가 가장 우수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영어에 자신이 없었던 나는 대원외고를 제외한 나머지 서울 소재 외고 중 지원학교를 고민했었다.
사실 기숙사가 있는 대일외고를 가고 싶었지만, 엄마 말을 따라 한영외고에 지원했다.
당시에는 대일외고를 못 간 게 엄청 서러웠는데, 돌이켜 보면 한영외고를 가길 잘한 것 같다.
왜냐하면, 가깝기 때문.
사실 지원할 때나 재학할 때는 어느 외고가 낫니 하며 이것저것 막 재지만, 졸업한 입장에서 보면 대동소이하다고 느낀다. 결국 내가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가는 거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집에서 가까운 외고를 추천한다.
'장난하나?'하며 이 말이 우습게 느껴지실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사뭇 진지하다.
나는 마침 강동구에 살고 있어서 통학하는 데 버스 타고 걸어서 20분 정도 소요되었는데, 반 친구들 중 서울 내 먼 타지에서 오는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물론 그런 친구들을 위해 학교에서 운영되는 셔틀버스도 있긴 했지만, 셔틀버스비도 꽤 되었던 걸로 기억하고 무엇보다 매일 통학에 소요되는 시간이 굉장히 컸다. 셔틀버스는 여기저기 들려서 오다 보니 아무래도 시간 낭비가 크다.
나중에 고2, 고3이 되면 이 시간이 아까워 몇몇 학생들끼리 모여 갹출하여 따로 카풀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고3 때는 통학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평일에는 학교 인근의 고시텔에서 주말에는 본가에서 생활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이렇게 하는 친구들 중에는 다소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편해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가까운 게 최고구나 하는 생각이 매우 많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목적성이 없다고 한다면 집 근처의 외고로 가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외고에 진학한 걸 만족합니까?"라고 묻는다면, "만족합니다"이기는 하다.
하지만 100%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한 80 대 20 정도인 것 같다.
위에도 언급했듯, 솔직히 나는 외고가 아니라 인문계에 진학했어도 지금의 대학을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고 오히려 서울대에 합격할 확률도 더 높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외고를 졸업하고 3년 정도 동안은 "완전 불만족한다"였다 ㅎㅎ...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대학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에 만족하는 쪽으로 기운 것 같다.
조금 옛날 이야기라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이 외고를 준비하는 학생분들과 학부모분들께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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