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플랫 구성원은 아래와 같다. (나름 국기색으로 구별해봤다)
- 일리야: 우크라이나 남자애인데 무려 19살이다. 우리 플랫 공식 말썽꾸러기. 취리히 연방공대에 교환학생중이지만 곧 정식학생으로 편입하려고 준비중이다.
- 얀: 스위스 남자애인데 20살로 일리야와 같은 학과이다. 키가 크고 토르랑 너무 닮아서 별명이 토르이다.
- 마르따: 스페인 여자애인데 20살로, 취리히대학교에 교환학생 중이다. 포스 있고 흥도 많은 장난꾸러기이다.
- 다니엘: 스코틀랜드 남자애인데 20살이고, 취리히대학교에 교환학생 중이다. 거의 매일 매순간 술을 마신다. 나긋나긋한 성격+말투로 마르따와 늘 티격태격하는데 그런 둘을 보고 있으면 너무 재밌다.
- 벤: 오스트리아 남자애이고 23살이다. 유일하게(?) 이 플랫에서 깔끔함을 유지하려고 노력중이다.
- 난디따: 인도 여자애인데 20살이다. 그럼에도 벌써 석사학생이다. 모두가 어떻게 난디따가 20살에 석사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스위스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망슈어 4개의 언어를 공용어로 하는 아주 독특한 국가이다.
그중 내가 있는 취리히는 스위스 내에서도 독일어권에 해당한다.
그래서 대중교통 내 방송이나 여러 공공기관 문서 등은 모두 독일어로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막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한 독알못 독린이...
하지만 영어를 할 줄 안다면 독일어를 못한다고 스위스에서 사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왜냐하면 스위스는 북유럽권을 제외하면 유럽에서도 굉장히 영어를 잘하는 편에 속하고, 특히 취리히는 스위스 내에서도 영어를 가장 잘하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했다....
물론 평소에는 크게 어려움은 없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는 말이다.
솔직히 대학에서 나보다 영어 못하는 사람 한 번도 못 봤다. ㅎ... 나만 잘하면 된다.
그리고 관공서나 은행 등도 다 영어를 잘한다.
그래서 뭐 정착하고 서류 떼고 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다만 아주 예외가 있는데 바로 상점이다. 내 경험상, 상점 직원분들은 영어를 잘 못하시는 경우가 많다.
영어로 물어보면 굉장히 난처해하면서 자신은 영어를 못한다고 독일어로 말씀하신다.
그래도 이건 좀 양반이다.
좀 많이 짜증나는 경우는, 내가 분명히 영어로 물어봤는데 알아들었으면서도 독일어로 대답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내가 "Excuse me. Where is toilet paper?" 했는데 "Erste Etage (1층이요)"라고 대답한다...^^
약간 인종차별 당한다는 느낌이 들면 너무 피해의식인 건가.
아무튼 '서러워서라도 독일어 공부 빨리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우리 플랫에서 아주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국제학생이 많은 취리히의 특성상, 보통의 학생숙소 혹은 WG(플랫쉐어)는 영어가 공용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우리 플랫은 정말 특별하게도 유럽인 비중이 높다. 9명 중 나와 난디따를 빼고는 모두 유럽인이다.
근데 정말 특별x2하게도 우리 플랫은 대부분 독일어를 잘한다.
일단 스위스인인 얀과 오스트리아인인 벤은 당연히 독일어가 모국어..^^
그리고 스코틀랜드인인 다니엘과 우크라이나인인 일리야는 놀랍게도 독일어 C1 보유자로 대학에서도 독일어로 수업을 듣고 있다.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러던 중 첫 번째 사건이 발생했다.
어느날 난디따가 마르따에게 "이번 학기에는 독일어 B2 수업 들어?"라고 말하는 걸 듣게 됐다.
띠용ㅇㅅㅇ??? 네?? B2요??
마르따는 "아니, 시간이 안 맞아서 B1을 한 번 더 듣게 됐어."라고 말했다.
마르따까지 독일어를 잘하다니... 너무 충격적이었다.
결국 우리 플랫에서 독일어를 못하는 건 나와 난디따뿐이었다. 약간 서글퍼졌다... 나도 독일어 잘하고 시퍼...
그래도 좀 위안이 되는 건 여전히 우리 플랫 공용어는 영어라는 점이다.
심지어 얀과 벤은 둘이 이야기 할 때도 영어로 얘기한다.
사실 이건 좀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었다. 왜 영어로 얘기하는지...ㅎ..
아무튼 그렇게 우리 플랫이 영어로 얘기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던 중 두 번째 사건이 발생했다.
원래는 이 플랫에 쭉 살았지만 개인 사정으로 인해 지난주 본국으로 돌아간 도니올이라는 우즈베키스탄 친구가 있었다.
근데 어느날 주방에 가보니 도니올과 일리야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유심히 들어보니 뭔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ㅇㅅㅇ 영어가 아니네? 그걸 유심히 들어야 아는 나
알고 보니 러시아어로 얘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진짜 글로벌하네 이 플랫 ㅋㅋㅋ...
그걸 본 마르따는 야유를 하며 "What are you guys talking about? We cannot understand it. Speak in English!"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서 새삼 얘네가 자기들끼리 얘기할 때는 독일어 써도 되는데 영어로 말해주는 게 얼마나 배려인지 깨달았다.
정작 도니올과 일리야가 얘기하던 게 무슨 정치 관련이라 하니 다니엘이 "그냥 계속 러시아어로 얘기해"라고 말했지만ㅋㅋㅋ
그리고 얼마 전 세 번째 사건이 발생했다.
방에 있다가 나갔는데 일리야가 누구랑 독일어로 대화중이었다. 오잉???
개인적으로 일리야가 독일어 쓰는 건 처음 들어서 흥미로워 가까이 가보니 모르는 아이가 있었다.
일리야의 스위스 친구인데 일리야가 다음달에 독일어 시험이 있어서 독일어 연습하려고 초대한 거라고 한다.
그리고 살짝 여담인데, 일리야가 나를 자기 친구에게 소개해주며 "얘는 한국에서 온 앤데 영어도 하고 일본어도 하고 스페인어도 해. 독일어도 배우고 있어. 놀랍지 않아?"라고 했다. 초큼 많이 감동이었다ㅎ. 하지만 자기는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영어, 독일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하면서
그러자 일리야의 친구가 "독일어 할 줄 알아?"라고 물어서 "음.. 아주 아주 조금밖에 못해^^;;"라고 했다.
그런데 때마침 다니엘이 주방으로 나왔다.
그래서 내가 다니엘한테 "다니엘, 얘네 독일어로 대화중이야. 너도 껴."라고 했더니 다니엘도 같이 독일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리야의 친구도 다니엘도 일리야도 내가 여기 와서 들어보지 못한 아주 이상적인 속도로 천천히 말해서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고, 또 다니엘과 일리야가 독일어를 하는 게 신기해서 나 역시 옆에 앉아서 기분 좋게 듣기평가를 하고 있었다.
근데 계속 일리야의 친구가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마치 내가 혼자 못 알아듣는 걸 많이 의식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자연스레 영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ㅠㅠ 그러자 다른 애들도 영어를 사용하며 독일어 대화가 끝이났다.
다니엘도 일리야도 독일어 쓰는 게 행복해보였는데, 뭔가 나의 무능력한 독일어가 그 행복을 방해한 것 같아 좀 씁쓸했다.
비슷한 경험을 학교에서도 한 적이 있다.
지금 학교에서 팀플 과제가 하는 게 있는데, 우리 팀은 스위스인 3명과 나, 그리고 나의 중국인 친구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매주 TA와의 미팅이 있어서, TA가 우리 팀플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시간이 있다.
어느날 중국인 친구는 아파서 못 오고, 나랑 스위스인 3명, 그리고 TA 이렇게 다섯 명이서 미팅을 하게 되었다.
TA도 스위스인이었기 때문에 본격적인 미팅 시작 전 스위스인 팀원 한 명이 TA에게 스위스어로 질문을 했고 스위스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냥 그러나부다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옆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TA가 나를 쳐다보면서 "I think we need to switch to English now."라고 하더니 지금까지 무슨 얘기를 했는지 간략하게 설명을 해줬다.
그리고 스위스인 팀원은 "오, 미안"이라며 나에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는 영어로 회의를 이어갔다.
이것도 뭔가 묘하게 서글펐다. 나 한 명 때문에 영어로 얘기해야 하는 게 얼마나 불편할까.
배려를 받는 것도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다. 내가 독일어를 좀 할 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뭐 결론적으로 잠시 바쁘다는 핑계로 놓고 있던 독일어 공부를 재개하게 되었다는 점은 좋지만 여전히 마음은 좀 그렇다.
빨리 독일어를 잘하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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